레위기 1-5장.
1.
1-3장과 4-5장의 차이점들을 인식해야 함. 이 두 부분은 매우 뚜렷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이 차이점을 인식하는 것은 레위기에 기록된 제사규례에 대한 영적의미를 이해하는 것에 매우 중요하다.
a.
첫째: 번제, 소제, 화목제
(burnt, cereal, peace offering)은 스스로 하나님께 드리는 자원제 (voluntary gifts)인 반면 속죄제, 속건제 (purification & reparation offering)은 반드시 드려야만 하는 gifts 였음.
b.
둘째,
번제/소제/화목제는 기쁨-헌신-즐거이 내어드림의 제사였고 속죄제/속건제는 죄의 문제를 다루는 제사였다.
c.
셋째, 이 때문에 번제/소제/화목제는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는 제사였으니 속죄/속건제는 ‘향기로운 제사’가 아니었다.
d.
넷째, 1-3장과 4-5장의 언어적 표현차이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i.
3장까지는 “만일 누가 –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이라는 구절이 공통된 도입방식인 반면, 4-5장에서는 “만일 누가 –죄를 지었으면 If a
person sins…”라는 구절이 메시지를 전개하는 기본적 방식이다.
ii.
1-3장은 내어드림에 관한 말씀이며 (감사와 기쁨과 사랑의 offering!!)
iii.
4-5장은 분명하게 언급되었듯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관련된 말씀이다.
iv.
죄사함을 뜻하는Atonement
라는 단어가 1-3장에서는 오직 한번 사용된 반면 4-5장에서는 무려 9회사용
v.
또 1-3장에서는 guilt, guilty (범죄한 사실)이라는 단어가 한번도 사용되지 않은 반면 4-5장에서는 이 두 단어가 각각 9회씩 사용되었다.
vi.
끝으로 1-3장에는 ‘용서 forgiveness’라는 단어가 전혀 사용되지 않은 반면 4-5장에서는 무려 여덟번 나옴.
2.
1-3장 (번제,
소제, 화목제)는 스스로 자원하여 드리는 자원제사인 반면 4-5장은 의무적 제사이다.
a.
우리의 죄악과 공존하실 수 없는 하나님이시므로 속죄/속건제보다는 아름다운 사랑과 섬김과 헌신을 다루는 자원제를 다섯가지 제사중에 먼저 언급하셨다.
i.
성도의 궁극적 존재목적은 죄사함이 아니라, 죄사함을 통과한 너무 큰 기쁨과 감사를 이기지 못하여 자신의 전존재를 하나님을 위하여 내어드리는 ‘온전한 아가페’의 사랑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ii.
그러므로 속죄제/속건제보다 더 중요한 헌신제사들이 더 큰 의미를 가진다.
iii.
그런데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존재 전부를 드릴만큼 주님을 사랑하지를 않는가? 예수님이 “많이 용서받은 자가 많이 드릴 것”이라고 하셨다. 탕감받은 죄악이 크고 깊은 만큼 더 깊고 본질적이며, 전존재적인 ‘감사의 헌신’을 드릴 수 있는 것이다.
iv.
누가 더 많이 용서받는가? 죄를 더 많이 지은 사람인가? 아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죄에 대한 민감함을 가진 사람이요, 그래서 자기죄를 크게 슬퍼하는 사람이다.
v.
우리가 죄사함의 단계를 가벼운 복음으로 슬쩍—하고 통과하고 넘어버리기 때문에 우리안에 감사가 없는 경우가 있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네 그러면 이제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 틀린 말 하나 없지만 여기에는 복음의 중심인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의 의미와 그 피를 흘려야할만큼 잔인무도하였던 우리의 옛사람의 죄악에 대한 처절한 눈물흘림과 몸서리치는 아픔이 없다. 그래서 쉽게 가벼운 마음으로 십자가의 복음을 받아드린다. 죄에 대한 오열이 없었으니, 다시 죄를 짓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문제를 놓고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vi.
나의 전존재를 다 내어드릴만큼 확실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용서의 확증을 위하여, 그리고 그 확증이 주시는 엄청난 영혼의 기쁨과 감사를 소유한 자로서, 그리고 그 기쁨과 감사때문에 세상이 알 수 없는 헌신의 기쁨으로 나를 주님이 부르신 하늘의 비젼을 위해 “부어지는 관제로”, 거룩하면서도 소박하여 그 누구에게도 자랑할 필요가 없는 은밀한 헌신으로 나아가야 할 일이다.
vii.
헌신을 강요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늘 이 아침에도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 것이다.
b.
왜 어떤
offering은 자원하여 드릴 수 있는
offering으로, 어떤 offering은 반드시 드려야만 하는 offering으로 지정하셨나?
i.
죄문제의 해결은 매우 중대한 영적 과제이므로 4장부터는 그 말씀의 톤 자체가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a.
누구든지:
인간들이여,
죄는 정말 중요한 문제이다. 죄악 때문에 사망이 찾아오는 것이다. 이제 당신의 신분을 가리지 말고 이 말씀을 듣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라.
b.
하나라도 범한다면 (in
any of the LORD’s commands) : 적당히 인간적 수준에서 상대적인 기준으로 죄를 저울질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너희의 죄악여부를 결정하는 시금석이다.
c.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1) 구원얻는 죄사함 및 (2) 구원이후의 삶에도 계속되어야 하는 죄의 씻음의 중대성을 깨닫고 거룩의 삶으로 나아오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촉구를 잘 드러내어준다.
d.
그런데 인간안에는 의가 없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만족>시킴으로 스스로 <의인> 이 된다는 말인가? “의인은 없나니 아무도 없도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니 (렘 17장)”
e.
그렇다면 어떻게 ‘의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i.
여기서 말하는 죄사함/죄씻음의 핵심은 우리에게 더욱더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은> 사람이 되라는 촉구이다. 옷입는 것은 ‘옷으로 가려지는 인간의 치부’는 그대로 있음을 말한다. 이것은 성화가 우리의 인격의 질적변화를 가리키는 말이 아님을 뜻한다. 이것을 깨닫는 것은 쉽지 않은 알이다. 누구든지 근사한 인격을 소유한 성도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비성경적인 발상이다.
ii.
의의 근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기억하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소유한 것이며, 그 의의 영광이 우리안에서 작동하시기 때문에 인간으로의 나의 인격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지, 그 변화된 인격은 어제도, 오늘도,
영원토록
<나의 인격> <나의 의>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할렐루야.
iii.
그리스도가 내 구원을 시작하게 하는 <의의 전부가 되시며> 나아가 시작된 구원의 삶동안 계속하여
<내 의로움의 영원한 옷>이 되신다. 할렐루야.
c.
반면 자원하는 헌신은 강요된 헌신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꺾지 않으신다).
i.
인간이 자원하여 다른 인격에게 진정으로 <값을 요구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무언가를 드릴 수 있는 때는 언제인가? 그것은 고통스럽게 자신을 휘어감고 있는 죄 문제를 해결하려는 때가 아니라,
<이미 자신의 인생의 죄의 문제를 해결>한 감사와 희열과 기쁨이 임할 때만 할 수 있는 일이다.
ii.
이 감사이 내어드림을 가능하게 한다 (1-3장).
·
그는 기꺼이 하나님 가까이 나아와 (qorban 고르반)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싶은 만큼의 ‘감사’를 소유한 사람이다.
·
참감사를 아는 심령은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크고 큰 영적 축복이다.
·
감사는 그리스도의 복음/용서의 축복을 경험한 사람만의 영적 특권이다.
·
감사안에 복음의 절정이 있다.
·
감사안에 복음의 이해가 있고, 찬송의 노래가 있고,
·
감사로 내어드림의 자원함이 가능하게 된다.
·
감사안에 하나님과의 하나됨을 향한 열망이 녹아져 있다.
·
하나님 , 나에게도 감사할 수 있는 축복된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a.
죄사함의 확신, 주님이 보혈이 확증하여 주시는 우리의 구원을 향하여 뿌려진 주님의 사랑 하나하나를 저에게 보여주시옵소서.
·
우리가 정녕 이 사실을 믿는가?
a.
죄를 만홀히 여기지 말라.
b.
나는 주님께 모든 드릴 만큼 주님을 사랑하는가? – 감사의 제목을 생각하여 보라.
i.
내 구원의 반석되신 그리스도 예수를 묵상하라
ii.
그리스도의 피흘리심
3.
요약하면 4-5장이 ‘용서=죄문제의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1-3장은 ‘자원함,
내어드림’의 방식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것이 주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다섯 가지 제사규례는 매우 중요한 차이를 보이는 두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진다는 점이다. 레위기 1-3장의 세 제사는 향기로운 냄새를 내는 제사이며, 하나님과 기꺼이 내어드리고 싶은 하나됨을 향한 헌신의 제사이며, 감사의 표현이며, 자원제사이다.
반면 레위기 4-5장의 두 제사 (속죄제-속건제)는 죄의 문제를 해결(용서)받기 위한 제사이다.
4.
레위기 1장(번제), 2장 (소제; 곡식제), 3장 (화목제)가 자원하는 자의 제사라면, 4장부터는 ‘의무적 제사’에 관한 말씀.
a.
왜 의무적으로 지정하셨는가? 너희가 이 제사는 반드시 드려야 한다는 것:
i.
바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인간은 결코 자유로운 기쁨의 삶을 살 수가 없다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간절한 메시지이다.
·
사람을 괴롭게 하는 모든 문제의 근원에 바로 죄가 있다.
·
결코 결코 죄를 가볍게 생각하지 말라.
·
죄는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ii.
죄는 두 가지 국면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
속죄제와 구원: 첫째, 죄악된 인간의 영적 타락이 가져다 준 영원한 죄의 심판
(지옥심판)을 피하여,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게 하는 속죄이다. 이것은 인간의 영적 구원을 이루는 속죄이다. 이것이 속죄제의 존재목적이다.
·
속건제와 날마다의 회개: 둘째, 인간은 구원이후에도 여전히 죄의 육신을 입고 있고, 죄의 세상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날마다 죄의 유혹과 덫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래서 날마다 이 죄를 씻어내야 한다. 이것을 게을리하면 구원을 받았지만, 죄의 권세에 속아 넘어가게 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불에서 나온 것 같이 <부끄러운 구원>을 얻게 되며, 나아가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급을 다 놓치고야 만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세상과 육신의 한계를 뚫고 성령과 말씀의 능력으로써 “죄악의 권세”를 넘어서는 “그리스도의 의로움으로 더욱 옷입어가는 성도”로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이 날마다의 죄씻음과 관련된 규례가 바로 속건제 규례이다 (요일 1:9). (*속건제는 “허물을 씻어내라”는 말이다.)
iii.
하나님의 성령께서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속죄제와 속건제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반드시 죄를 씻어내는 삶을 살아라!!”
·
영원한 죄의 저주를 벗어나 영원한 생명과 의의 ‘축복’을 주는 속죄제. 그것을 반드시 드리라. 그래야 한다. 그리고 날마다 주님과의 더 깊은 사랑의 교제위해 네 죄를 고백하고 토해내고 잘라버리라.
·
영원히 그리고 날마다 죄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거룩한 삶으로 나아오라.
5.
궁극적으로 속죄제는 그리스도 예수의 헌신을 모형화한다.
a.
그리스도의 대신 죽으심으로 인한 영생으로 이르고 하나님 자녀가 되게 하는 구원에 대한 가장 뚜렷한 모형.
b.
속죄제는 십자가의 대속사건을 상징하는 모형임.
c.
대속죄일은 1년에 한번 드리는 제사로서 (유대력 7월 10일).
i.
히브리서 9;7절 – 속죄제는 일년에 한번 즉 매년 드리는 반복의 제사이어야 했지만, 그리스도의 속죄제는 영단번 (한번의 제사로서 영원한 효력이 있는) 다시 반복될 필요가 없는 완전한 제사였다 (히 9:14,
10;22).
그리스도께서 진영밖 골고다에서 피흘리시고 버려지신 바와 같이, 제물(피를 제외한)은 진영밖에서 불살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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