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으로의 삶.
그것은 우리 영혼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물들여 버린 세상의 즐거움,
육신의 정욕을
도끼로 나무끊어내듯 잘라내고,
도끼로 나무끊어내듯 잘라내고,
더이상 죄를 향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즐거워하고,
사랑하며 살 것을 결단하는 삶에서 시작된다.
사랑하며 살 것을 결단하는 삶에서 시작된다.
도대체 누가 이런 삶을 시작하고 결단할 수 있단 말인가?
답은 간단하다.
진정으로 거룩의 삶을 결단하는 사람은 거룩하지 못한 삶의 쓴 맛을 맛본 사람이다.
그는 거룩을 버리고 죄를 좇아서 살때 찾아오는
인생의 참혹한 영적 아픔과 단절과 어둠을 경험한 사람이다.
하나님을 버리고 그 대신 “인간적-육신적 정욕을 따라서 살때의 결과”.
그 쓴잔을 한껏 마셔본 사람만이 주님의 거룩의 말씀을 향한 전적 헌신을 결단할 수 있다.
진정으로 거룩의 삶을 결단하는 사람은 거룩하지 못한 삶의 쓴 맛을 맛본 사람이다.
그는 거룩을 버리고 죄를 좇아서 살때 찾아오는
인생의 참혹한 영적 아픔과 단절과 어둠을 경험한 사람이다.
하나님을 버리고 그 대신 “인간적-육신적 정욕을 따라서 살때의 결과”.
그 쓴잔을 한껏 마셔본 사람만이 주님의 거룩의 말씀을 향한 전적 헌신을 결단할 수 있다.
사람은 그래서 어리석은 존재이다.
솥뚜껑에 손이 닿아 뜨거운 아픔을 맛보아야만 “얘야, 솥뚜껑만지지 마라…”하시는
엄마-아빠의 말씀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최고의 인생을 살게 하는 최고의 명약인 것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픔이라는 감각을 주셨다고 난 믿는다.
엄마-아빠의 말씀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최고의 인생을 살게 하는 최고의 명약인 것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픔이라는 감각을 주셨다고 난 믿는다.
내 허물과 실수로 인한 죄악의 상처가 주는 아픔을 경험함으로
우리는 주님의 거룩을 소망하는 잘 변화되어 간다.
그래서 아픔은 우리를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데려가는 최고의 지팡이다.
우리는 주님의 거룩을 소망하는 잘 변화되어 간다.
그래서 아픔은 우리를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데려가는 최고의 지팡이다.
오늘 우리 안에 아픔과 짙은 새벽안개같이 자욱한 후회들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거기서 아픔을 뒤로 하고 새롭게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따르는 기쁨을 배워가자.
의무와 두려움에서 아니라,
즐겁고 좋아서 주님의 거룩을 하나씩 새롭게 배워가자.
그래서 입에서 찬송과 감사가 넘치게 하자.
밤새 계속된 천사와의 싸움끝에 다리를 다쳤던 노인 야곱.
절둑거리며 다시 걸음을 배워야 했던 그 새로운 새벽의 거듭남의 순간.
그 차갑고 깨끗한 공기를 우리 모두 한껏 들이마시자…
그렇다. 아픔의 알을 깨고 주님의 영을 한껏 들이마시자.
절둑거리며 다시 걸음을 배워야 했던 그 새로운 새벽의 거듭남의 순간.
그 차갑고 깨끗한 공기를 우리 모두 한껏 들이마시자…
그렇다. 아픔의 알을 깨고 주님의 영을 한껏 들이마시자.
창세기 32:25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거룩이라는 언어는 인간이 감히 쓸수 없었던 말이었는데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난 우리 곁에 있음에 감사해요!
답글삭제주님의 인도하심에 조용히 그분과 함께 속삭이며 사명의 자리로 나가길 소망하고 있네요. 무더운 텍사스의 날씨도 새로운 시원한 옷으로 갈아 입고 태어나겠지요.
건강하시고 주 안에서 늘 평강하길 기도할께요. 좋은 글 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카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