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품고, 죄를 사랑하고, 죄를 즐기고, 죄에 묶여지낼 수 밖에 없는 인간"
그 죄악의 인간이 가질 수 밖에 없던 목마름이 있다.
그리고 그 긴 인생 지루한 인생동안
하나님을 대적하던 바벨탑의 습관을 버릴 수 없어서 시작한 것이 있다.
바로 과학이다.
지식의 탐닉....발견의 추구
무엇이든지 궁리하고 모색하고 설명하려고 하고,
자연과 세상을 통제하는 왕노릇 하려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바로 과학이다.
(물론 과학이 우리에게 가져다 온 편리함은 이루 말할 것이 없을 것이지만, 본질적으로 과학은 하나님을 대적하기를 매일 일상의 업으로 삼고 사는 인간들이 하나님 대신 의존하는 죄의 무기인 적이 훨씬 더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과학에 매료된다.
책을 읽고 진한 감탄사를 내뱉는다.
정복욕이 충족되고, 지식욕구가 충족되는 순간이다.
<자아>가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인간의 지식의 깊이는 정말 얕기만 하다.
지식이라 부르기에는 너무나 본질적이지 못한 누더기로 가득한 것이 인간의 지식이다.
어떻게 보면 <신학>이라는 것도 하나님을 대적하려는 인간이
예수그리스도께 무릎을 꿇고 surrender하는 대신,
지식과 머리와 말과 논리라는 간접적인 장벽너머로 하나님을 가두어버리는
가장 교묘한 하나님회피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인간의 신학안에 갇혀지거나 정의되실 수 있는 분인가?
위대한 구약-유대주의 사상가였던 바울도
한때 율법조문을 입안 가득 채운채,
예수가 빠진 유대주의적 신관,우주관, 인간관으로 가득차있던 사람이었다.
신학은 그의 호흡이자 일상이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 주님이 빠진 신학이었다.
그런 바울에게 예수그리스도 주님이 찾아오셨고,
구약이 그에게 준 분노 - 목마름 - 답답함 - 정죄감 - 율법의 피로감...을 도말해버리시고,
생명의 사랑, 진리의 환희, 헌신과 순종의 예배, 감사와 감동의 경배로 그 마음을 채워주셨다.
그 엄청난 변화를 맛보아 경험한 바울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전에 알던 모든 것이 이제 더럽고 추한 배설물과 다를 것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내 주님을 더 깊이 경험하고 알아가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은 없습니다.
바울의 묵상과 고백이 들려오는 지금
나는 나의 오늘을 바라다본다.
나는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사람인가?
나에게 예수님은 진정한 경배와 헌신의 목표이신가?
나는 오직 예수님 한분만을 위하여 살고 싶어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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