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4일 화요일

성경신학(Biblical theology).

성경. 하나님의 말씀.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인 나에게 다음의 문구는 매우 중요한 성경읽기의 전제가 된다.

"one Word by one God for one salvation through one Way who is Jesus Christ"

생명얻는 오직 한 가지 구원의 길로 주신 한 분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한분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일관된> 한 가지 말씀. 성경.

굳이 번역을 하면 이렇게 될까?
성경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한 가지 주제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진리/생명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 자체가 참으로 놀라운 영적 축복이다. 그것을 깨달은 사람은 복있는 설교자이자, 복있는 하나님의 자녀이자, 능력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성경신학이란 용어는 Biblical Theology라는 영어용어를 번역한 것이다.
신학적 탐구의 대상 자체가 다른 주제가 아닌 바로 "성경"이 되게 하는 것.
이것이 성경신학의 핵심이다.

성경의 구조, 문맥, 역사, 문화, 언어에 대한 모든 연구를 총동원하는 이 의미있는 성경읽기법의 핵심목표는 단 한가지............창세기에서 신약 계시록까지 <한분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록하고자 하신 것인지를 추구하는 것이다.

a big pitcure...성경속을 관통하는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들을 향한 큰그림 깨닫기
the whole scene of God's revelation from the heights...위로부터 내려와야만 하는 하나님의 계시/묵시
One might plan from the 1st creation to the new creation....첫창조부터 새창조의 때까지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의 계획
a point where the Bible ceases to be a big mass of 'unconnected stories and narratives" 성경이 더이상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이야기들의 짜집기가 아님을 깨닫는 순간을 만난다는 것!!

참으로 exciting 한 일이다.
성경이 낱권, 낱장, 낱소절의 단순한 묶음이 아니라, 모든 낱책과 장과 절이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치밀하고 정확한 씨줄과 날줄로 엮여져 있고, 그 정치한 텍스트의 오직 한 가지 목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 나라의 생명.진리. 영광. 모습>이라는 것을 무릎을 치며 깨달아가는 것은 정말 놀라운 과정이다.


영적 자유함을 맛보는 기쁨이 그 안에 있다.
영적 진리를 깨달음으로 <놀랍고 새로운 삶의 목표>를 만나고, 그 성취를 위해 힘쓰게 되는 원동력이 성경신학적 말씀읽기가 주는 엄청난 유익이다.

성경신학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기 원하셨던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그림을 언어화할 뿐 아니라, 언어가 그려낸 장면과 인물과 대화와 무수한 고뇌와 묵상들의 궁극적 존재목적을 깨닫고 그에 대해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깨닫게> 된다.
어쩌면 성도의 삶의 가장 기쁜 순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알고 만나고 경배하는 것말고 또 무엇이란 말인가?

신학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지적 탐구라고 말하지만, 신학하기의 구체적 현장으로 들어가면, 인간이 하나님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정의는 매우 잘못된 정의이다. 신학은 하나님이 당신의 진리를 계시하시기 위해 선택한 인간의 언어. 곧 말씀의 기록을 <말씀앞에 선 우리>에게 진리로 풀어주시고, 부어주실 때에만 비로소 그 길이 열리는 것이다.

말씀이 우리를 풀어가는 것이지, 우리가 말씀을 푸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말씀앞에 서고자 하는 우리의 역설이 존재한다.
읽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탐색하고 고민하는 주체가 우리임은 분명하나, 그 노력이 진리의 계시를 가능하게 하는 참주체는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부으심이 없이는 모든 것이 열매없는 헛된 물거품이 되고 만다.
성경신학. 그 놀라운 비전과 목표가 주는 흥분된 영적 감동을 추구하지만,  여전히 성경신학은 무릎으로 선 자들에게만 진정한 축복이 될 수 있을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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