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4일 월요일

이야기 (Narrative) 의 파워

성경을 기록하는데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 텍스트구조는 논술이 아니라, 이야기였다.
논리구조가 집중적으로 사용된 성경은 매우 제한적이여서 기껏해야 로마서 4,5,6,7,8장 정도가 생각난다.
이야기는 사람들이 살았던 삶을 말하고 기록하고 나열하면서, 듣는 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자연스럽기 그지 없는 텍스트 기록방식이다. 거기에는 인위적인 teaching이나 직접적 논리적 강요-설득의 의지가 개입될 여지가 많지 않다. 그저 누가 무엇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더라...는 식의 회고식 나열일 뿐이다.


직접적 논술/논변을 사용하는 경우보다 텍스트의 의미와 교훈은 훨씬 폭넓게 해석될 수  밖에 없다. 동시에 어떤 특정한 논점을 직접적으로 <강요>받는 것이 아니므로 청자(텍스트 수용자)의 입장에서 보면 텍스트 해석의 자유가 비교적 보장되는 장점이 있다. 실로 매우 다양한 텍스트 의미들을 중에서 수용자는 자신의 처지와 상황과 텍스트 세계에 가장 잘 들어맞는 <교훈이나 의미>를 이야기를 통하여 <능동적으로 생성: actively generate> 시켜낼 수 있다.


이것은 텍스트 저자로부터 그것을 읽거나 듣는 텍스트 수용자(해석자)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권리와도 같아 보인다. 저자가 특정 의미를 강요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이미 한 것이므로, 텍스트 수용자는 자유로운 의미생성/의미투사의 즐거움을 누릴 수가 있게 된다. 이것이 이야기식 텍스트구조의 최고 매력이 아닌가 싶다.


사실 특정한 메시지를 강조/강요하는 텍스트야말로 인간의 창조적 능력을 가장 제한하는 것같다. 그것이 친구나 가족간의 대화이든, 설교이든, 연설이든, 수필이든, 시이든, 소설이든 상관없이 사람은 메시지가 강요되거나, 지나치게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것>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은 자신의 내면안에서 무수한 개념적 프로세싱을 통하여 어떤 깨달음의 순간, 진리의 임재와의 강렬한 encountering을 즐기고자 한다. 


사람의 몸은 묶여있거나 어떤 범위내에 제한될 때 가장 괴롭다.
마음도 마찬가지여서, 사람은 자유로운 사고와 상상과 추론과 묵상과 연결이 가능한 <텍스트 해석의 자유>를 통하여 강요된 teaching이 주는 것과는 상상할 수 없이 더 큰 깨달음의 기쁨에 도달하고자 한다.


텍스트 저자는 얼마든지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직접성의 수위를 조절할 권한이 있다. 자신이 창출해낸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그런 저자의 메시지 전달욕구가 잠시 미루어지고, 오히려 해석의 주체가 수용자가 될 때 텍스트라는 중간매개체를 사이에 두고, 저자와 수용자 사이에 팽팽한 긴장의 시간이 흐른다.


이런 면에서 성경을 이야기식으로 적어가신 하나님의 텍스트 창조방식이 놀랍기만 하다.
창조자로서 타락한 죄인을 회심시키고, 성장시키고, 거룩한 성화의 삶으로 인도해가셔야만 하는 실로 엄청난 영적 목표 앞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읽고 생각하고 느끼라!>는 거대한 텍스트 수용의 자유를 주셨다. 얼마든지 하나님은 성경의 전달방식을 직접적인 논술과 논증과 논리형태로 만드실 수 있으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이야기 형식을 택하셨다. 그것은 성경을 읽는 우리에게 <강요>가 아닌 <자유의지의 깨달음의 기쁨>을 통하여 메시지를 전달하기 원하셨기 때문이다.해석의 여백을 허락하신 성경의 저자. 하나님은 참 놀라우신 분이다. <텍스트 생성자>로서 수용자의 텍스트 해석의 의지를 <신뢰>하셨다는 것이 잘 믿겨지지 않는다. 


상명하달식의 teaching이 아닌 스스로 깨달아 아는 자들이 되라는 하나님의 성경기록방식은, 우리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매우 섬세한 배려를 엿보게 한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으며, 사랑은 성내지 않으며 사랑은 오래 기다리는 것이라고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설명하신다.


기다리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때가지 쉬지 않고 우리에게 당신의 마음을 쏟아붓고 계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다시 만나고 싶다.물론 성경만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성경을 기록하신 성령님 (곧 성경의 가장 깊은 곳까지 우리에게 풀어주실 권능의 성령님)의 형상으로 우리안에 내주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우리에게 성경의 메시지를 풀어주신다. 참 신비로운 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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