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4:12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시 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성령님의 말씀은 그 어떤 칼보다도 날카로운 '검'이면서, 또 동시에 꿀보다도 더한 단맛이 있다.
어릴적부터 단맛과 친한 나는 꿀을 참 좋아한다. 맑은 꿀이 담긴 유리병은 언제나 시선을 끈다.
입에 담긴 꿀은 달콤하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너무나 영혼에 큰 만족을 주는 말이나 글을 접하면 신속하게 '아멘'을 하며 마음에 받아들인다. 영혼의 깊은 만족과 기쁨이 정말 큰 감동과 흥분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즐거이 받아들인 성령의 말씀(꿀같은...)이 동시에 세상의 어떤 칼보다도 날카로운 칼이기 때문이다.
서커스 하는 이들이 가끔 무시무 시하게 긴 칼을 입속으로 집어 넣는 마술을 한다.
볼때는 정말 큰일 나겠다 싶지만, 눈속임의 마술이라는 아는 이상 고통스러움은 없다.
그런데 성령의 칼을 삼키는 것은 눈속임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칼을 삼켜본적이 없는 대부분의 우리들이기에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한 구절도 아니고, 수십 구절을 아멘으로, 아니 성경을 아예 통독하며 우리는 아멘으로 말씀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성경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아멘으로 받아들인 말씀의 숫자만큼 우리 영혼안에는 하나님의 칼이 들어오는 것이다.
참 기가 막힌 상상이지만,
무수한 칼날이 내 영혼의 도처에 퍼져 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적막이 흐른다.. 왜냐면 너무나 잔인하게 난도질당한 영혼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성령의 말씀이 내면으로 들어오면,
잔혹하리만큼 철저하게 내 영혼의 죄악을 도려내기 시작한다.
이것이 말씀 역사의 첫단계요, 동시에 내적 사역이다.
꿀같이 달아서 삼켜 들였던 말씀들이 언제부턴가 나의 죄악들을 도려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아픔이 불길같이 다가온다.
때로는 환경을 통한 고통으로, 때로는 나의 어리석은 죄악된 판단들과 선택과 언행으로,
잔인한 "검의 사역 (The Ministry of the Sword)"이 삶속에 지속된다.
언제까지 말씀으로 인한 아픔들이 계속되는가?
더이상 잘라낼 죄악이 없을 때까지...
더이상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의 영이 소멸될때까지이다.
그렇게 말씀의 내적 사역(internal ministry)이 온전한 목표점에 도달해 가면서,
서서히 말씀은 우리의 삶과 입을 통하여 바깥을 향하여 나오게 된다.
내면이 성령의 검으로 처리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참으로 경외스러운 것이다.
그의 삶을 보고, 그의 입술의 말을 듣는 사람마다
죄악이 도려내어지고, 결국 생명의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게 되는 일이 생겨난다.
'검(말씀)'의 외적 사역(external ministry)가 시작된 것이다.
꿀로 시작한 말씀은
내 안의 죄악을 도려내는 칼이 되고,
결국 내 삶의 바깥으로 나아가 이 세상의 죄악을 도려내시는 하나님의 도구가 된다.
이 놀라운 진리를 깨달았을 적에, 참 쉽게 '아멘'을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곧 나는 그러니까 더 많이, 더 자원함으로 '아멘'을 해야겠구나.. 더 많은 말씀을 내면속으로 채워들여야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잘라져야 할 내면의 죄악을 도려내 정결한 예배자로 서고 싶다.
그래서 작은 내 삶의 몸짓들이, 작은 믿음의 말들이
이 주변의 죽어가는 이웃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생명>을 전파하게 되는
놀라운 말씀의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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